까오방의 소수민족들(흐몽(Hmong)族은... )
서북부와 북부 베트남의 깊숙한 오지. 그곳엔 다양한 부족들이 얽혀 살면서 각기 다른 독특 한 고유의 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해 마치 문화 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베트남에는 정부가 자국의 국민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는 부족만 해도 54종족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서북부와 북부 지방은 지형적으로 중국의 운남과 라오스에 연접하면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팡시팡 봉(3,143미터)을 중심으로 마치 서로 다른 색깔의 계단식 수를 놓은 듯이 여러 부족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소수민족들은 다른 동남 아시아 국가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피부가 희고 인물도 수려할 뿐만 아니라 부족들마다 각양각색의 의상과 여성들의 머리장식, 그리고 온몸에 착용하고 있는 여러 형태의 장신구들이 매우 아름답고 저 마다 특색을 갖추고 있어 정말 흥미롭기 그지없다.
더욱 흥미를 끄는 것은 수 천년 전부터 삶의 터전을 한 곳에 붙박고 살아온 토박이 부족과 인접 지역들로부터 수 세기에 걸쳐 이주해온 부족들이 어우러져 살면서 제각기 그들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가면서 공존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수세기 동안에 걸쳐 많은 부족들이 옮겨와 사는 동안 하나의 질서가 만들어져 늦게 이주해온 부족일수록 더욱 환경 조건이 열악한 고산 지역에 정착하게 됨으로서 나중에는 마치 계단처럼 층을 이 루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지탱하려고 하는 문화적인 애착이 대단하다. 주변 환경은 신 문명의 침투로 인하여 급속히 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후손들에게 한결같이 전수하여 본래의 토속 언어에서부터 생활 풍습에 이르기까지 고집스럽다 싶을 만큼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집착한다. 외래 문화에 동화되어 전통을 하나하나 잃어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는 커다란 대조를 이룬다.
최근까지 이 지역의 소수 민족들은 베트남 중앙 정부에 세금과 공물을 바치는 정도로 사실 상 자치 지역으로서 자율권을 행사해오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이래 소수 민족 자치권 폐 지가 헌법으로 제정됨으로써 중앙 정부가 소수 민족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을 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중앙 정부의 소수 민족에 대한 신문화 정책은 화전과 양귀비 재배로 생업을 이 어가던 이들의 생활을 정상적인 농업 생활 구조로 바꾸어 계단식 논농사나 옥수수의 일종인 '카사바'라는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도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그들의 전통 문화를 현대 문명의 세찬 침투 속에서도 오로지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모습은 진정 가치있는 삶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재조명하게 만든다.
카메라를 모르는 순진한 흐몽(몽)족
까오방(Cao Bang)마을의 아침은 길게 드리워진 안개와 새벽 잠을 시샘하는 수탉의 허스키 한 고음으로 시작하였다. 전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온 하루를 걸려 하노이로부터 달려오느라 다소 지치긴 했어도 어설프나마 이곳 시골 호텔에서 하루 저녁을 지내고 난 아침, 이 지역에 터 잡고 살고 있는 소수 만족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로 피로감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 였다.
일찌감치 새벽 시장으로 나와 장터 한쪽 좌판에 앉아 쌀국수로 아침을 대신했다. 닭고기 국 물에 쌀국수와 야채를 곁들인 국수는 가져간 고추장을 넣어 얼큰하게 먹으니 그 맛은 그야 말로 천하 일품이다.
까오방 지방에서 가장 큰 장터로 이른 아침에만 열리는 이곳은 재래 시장이 다 그러하듯 소박한 사람들의 열기와 활력으로 가득하였다. 이 지방에서 재배되는 채소와 과일, 닭, 돼지, 오리 등은 물론 중국과의 국경이 멀지 않은 탓인지 수입된 과일과 각종 생필품들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베트남인들 사이로 문득 낯설은 고산족의 전통 의상들이 눈길을 끌었다. 소수 민족들의 의 상은 일반인들에 비해 워낙 독특해서 빽빽한 인파 속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이들은 대개 자신들이 재배한 농작물을 망태에 넣어 등에 메고 꼭두새벽부터 먼길을 걸어와 변변한 좌 판도 없이 일반인들과 섞여 별다른 이질감 없이 장사를 하는 모습이었는데, 우리에게는 진 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본격적인 고산족 마을을 방문하기에 앞서 이곳의 지방 경찰청에 들러 이민국에 신고 절차를 밟았다. 방문 목적, 기간 그리고 시간별로 방문할 장소 등을 서류에 적은 다음 몇 사람의 결재를 거쳐 신고 필증을 발급해 주었다.
시간은 다소 결렸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협조적이었으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준 다음 친절한 안내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신고 절차는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만약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이 신고 여부가 문제의 해결을 좌우하게 된다.
까오방에서 남쪽으로 비포장 도로를 따라 30여 킬로미터를 올라가자 산 중턱에 자리한 고 산족 마을과 만나게 되었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흐몽(Hmong)族은 물가에 자리잡고 사는 타이족과는 달리 대부분 산속이나 산 중턱에 정착하여 쌀과 옥수수, 카사바 등의 농작물을 재배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침 조상을 기리는 명절이어서 방문한 흐몽족의 마을에는 외지 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담소하고 음식을 먹으며 웃고 즐기고 있었다.
이 마을의 주인인 흐몽족은 베트남에 본포되어 있는 5개의 흐몽족 중 백 흐몽족으로서, 일 행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처음에는 의아해하며 무언가 경계하는 빛이 가득했으나 친근감 있는 행동에 곧 웃음을 머금으며 집 안으로 초대하여 차와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이 이방인들을 보려고 애 어른할 것 없이 순식간에 모여들어 집 안팎으로 빼곡하게 들어서 눈을 반짝이며 일행의 일거수 일투족에 즐거워 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들 집승을 피하듯 모두 허둥대며 도망 가느라 사진 촬영 또한 쉽지 않았다. 대부분 카메라를 처음 보는지 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시선을 집중하였다.
모든 흐몽족은 다른 소수민족과 다른 독특한 풍습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식들이 대개 15 세 이상이 되면 양가의 주선으로 결혼을 시키는데, 정식 결혼식이 처음부터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거를 먼저 시킨 후 첫 아이를 낳은 시점으로부터 적당한 날을 잡아 비로소 결혼식을 거행한다.
동거를 장기간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두 사람의 정식 결혼은 불가능하며, 각자 다른 상대를 골라 다시 동거를 시작해야 한다.
이들의 놀라운 풍습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흐몽족은 가을 추수기가 되면서 일정 기간 동안 매주 한번변씩 그들만의 장터에 모이는데, 이 모임은 한밤에 이루어지며 술과 춤을 즐기는데, 파티가 끝날 무렵 각각의 성인 남녀는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자유로이 다른 상대를 골라 사방으로 흩어져 서로를 탐닉한다고 한다.
새벽이 어슴프레 찾아올 무렵 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다. 물론 이 일로 인해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책망하거나 싸우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다.
가끔 여자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현재 남편은 그것을 문제 삼지도 않았으며 순순히 자신의 자식으로 키운다. 이러한 신기한 관습은 현존하는 전세계의 소수 민족 중 오직 이들 흐몽족만이 지니 고 있는 것같았다.
물론 남녀간의 이러한 어울림은 오직 같은 흐몽족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외지인의 접근이나 참여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한다.
흐몽족은 타 부족과의 동 거나 결혼이 금기시되어 있다. 오늘날 다른 소수 민족은 또다른 소수 민족이나 베트남인들 과의 결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이나 이들 흐몽족만은 현재까지도 자기 부족 간의 결혼만을 고집스럽게 지켜가고 있다.
오후에는 까오방 북쪽의 눙(Nung)족 마을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으로 가기 위해 넘어가는 고 개 위에서 펼쳐지는 산악 풍경에 그저 넋을 잃으며 셔터를 눌렀다.
이 눙족은 베트남의 소 수 민족 중에서도 그 숫자가 많지 않아 자오족이나 타이족과 달리 쉽사리 눈에 뛰지 않아 이들과 관련된 자료나 정보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눙족은 대개 이곳의 아름다운 산자락 밑에 아늑하게 마을을 형성하여 모여 살면서 고구마, 쌀 등의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데, 평지에 그것도 비교적 교통이 원할한 곳에 있으면 서도 베트남의 일반인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적인 의상과 관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의상이 매우 단순하고 소박하여 남녀 모두 짙 푸른색의 저고리와 바지를 착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감청색의 저고리는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이 즐겨입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머리에는 둥근 형태의 감청색 스카프를 두름으로서 여성들의 맵시를 더한다. 얼굴은 흰 편이고 몸은 대개가 호리호리하였다. 마을에 들어서자 이곳 역시 동네 사람들 모두가 뛰쳐나와 일행을 보려고 모여들다가 카메라 를 들이대면 사방으로 도망을 갔다.
조그만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살그머니 모여들다가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대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간다. 동작이 늦어 뒤에 쳐진 아이는 그만 목을 놓아 울고 만다. 이 마을의 촌장은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할테니 술과 차 그리고 저녁 식사를 하자는 권유를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아쉬운 마음으로 뿌리 치고 발길을 돌렸다.
가라오케, 단란주점 있는 까
오방가라오케, 단란주점 있는 까오방
까오방에서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에 또다른 소수 민족인 자오띠엔(Dzao Tien)族(자오족의 일종으로 가슴에 동전을 얇게 펴서 장식으로 만들어 치장한 것이 특징)마을에 들러 즐거움 을 함께 나뉬다.
앳된 자오족 소녀들이 전통의상에 어설픈 화장을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나가다가 카메라에 놀라 표정이 굳어지며 어쩔 줄 몰라했던 귀여운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거의 전통이 사라져 버려 베트남인으로 동화되어 버린 다이(Day)족의 마을에서 정말 어렵사리 발견한 전통 의상을 입은 할머니를 사진기에 담는 순간 기쁨이 온몸을 감쌌다.
중간에 잠깐 기착한 바깐(Baccan)이라는 곳에서는 주변의 소수 민족 축제가 막 시작할 채 비를 갖추고 있었다. 일주일간 각 소수민족별로 의상 및 전통무용, 미인대회등 다채로운 행 사들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아쉽게도 다음 행사인 2년후에 다시 한번 와 보리라는 마음만으로 이곳을 뒤로 하고 떠났다.
베트남이 문호를 개방하면서부터, 최근에는 이들 베트남의 고산족들에 관심을 갖고 외부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미 사파와 같은 지역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알려졌거나 아직 덜 알려진 소수민족 마을의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유의할 것은 이러한 오지의 방문에는 길을 잘아는 현지안내원의 동반이 필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없이는 가고자 하는 지역의 접근은 가능할지 몰라도, 정 작 도착해서는 소수족 과의 만남이나 그들의 전통행사등에의 참석은 거의 불가능하여, 공연 히 헛수고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 까오방 까지의 길은 생각보다 험하였다. 하노이로부터 북쪽으로 300km 이상 달려야만 했고 비 포장이 많은데다 길이 좁고 높은 고개들이 많아 편도 13시간이상이 소요되어 매우 피곤했다. 그러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이들 소수민족과의 만남이 시작되면서 피로는 흥 분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고생한 보람을 느낄 수 있어 흐뭇했다.
물론 하노이에서 당일치기로 소수민족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는데, 대개 이 런곳은 소수민족의 마을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미 많은 관광객들을 경험한 뒤라 상업화 되어있어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곳에서 파는 기념품 중 소수민족의 전통의상에는 "Made in Taiwan'이라는 라벨이 붙어있어 방문객들의 실소(失笑)를 자아내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이들 소수 민족에 대한 인종 차별은 없으며, 오히려 정부로부터 직, 간접으로 보 호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워낙 깊고 험준한 산악지대나 오지에서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이들의 성향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과 경제력의 낙후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어 문맹과 조기결혼, 다산과 조기사망등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음에도 정부의 지원자체가 용이하지 않을 정도이다. 
여행의 목적은 그야말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목적 중 하나가, 비록 다른 나라이기는 하지만, 소박하고 때묻지 않은 고산족이나 소수민족들의 자연적인 삶의 형태를 접할 수 있는 이러한 테마여행은 어떠한 여행보다도 보람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 수 있으리라 고 확신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삶의 현장은 아마도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 같다. 정부의 개발 정책으로 베트남의 북쪽 끝 오지에도 비록 조악하기 짝이 없지만 가라오케가 설치된 주점이 들어서게된 지금 새로운 유행에 호기심 많은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 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기 때문이다.
과연 때묻지 않은 인류의 순수한 모습이 영원히 보존될 수는 없는 것일까.
1997. 9
1. 교통편:
하노이에서 까오방 까지는 2-3명의 적은 인원인 경우 지프가 편리하다. 대개 여행사나 호텔 에서 알선해 주는 것이 안전한데,
비용은 상당한 차이가 있으므로 반드시 최소한 몇군데를 체크해본 다음 결정할 것. 안내원이 그 지역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 가가 여행의 결과를 좌우한다.
2. 숙박:
하노이에는 특급호텔로부터 싼 여관까지 다양한 숙박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지방도 시들에는 호텔이라야 고작 인민 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대부분이지만 이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사전에 예약을 철저히 확인하지 않으면 방을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므로 완벽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게스트하우스의 요금은 4인 1실기준 1인당 미화 7-10달러 선 이다. 대개 냉난방 시설이 없으므로 겨울에는 의복 준비에 신경을 써야 한다. 비누, 수건을 비롯한 개인 세면도구의 지참이 필요하다. 한가지 부언하고 싶은 것은, 물론 이렇게 조악한 시설에서 숙박한다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것이 오히려 훗날 멋진 추억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웬만한 불편함은 이겨낼수 있다.
3. 식사:
하노이에는 필요한 경우 한국식당도 여러 곳 있으므로 별로 식사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 다. 지방도시에서는 현지 식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 입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사전에 몇 가지 밑반찬을 준비해가면 별 무리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밑반찬으로는 고추장, 김, 마늘장, 캔 참치류, 컵라면 등이 적당하다.
까오방에서는 쌀밥과 돼지고기(살보다는 비계 쪽을 선호한다), 닭고기, 나물등을 주식으로 먹는다. 또한 장터에 가면 소위 월남국수라고 알려진 쌀로 만든 국수와, 몇 가지 나물과 반찬을 맛있게 즐길 수 있으며 가격은 매우 저렴하다.
4. 참고사항
* 식수:
오지여행을 계획할 경우 가장 중요한 사항에 속한다. 대개 베트남인들은 지방이나 도시인을 막론하고 대개 녹차를 끓여 마시는 것으로 식수를 대신하며, 또한 가장 안전하다.
하노이 등 대도시에는 병에 들은 생수를 쉽게 살 수 있으나 지방에서는 그렇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마실 수 있는지 대단히 의심스럽다.
까오방의 경우 호텔을 포함한 모든 상점의 음료수들은 냉장보관이 안된 상태였다. (그나마 가게도 몇 군데 없다) 따라서 하노이를 출발하기 전에 음료수를 충분히 사서 가지고 가야 한다.
* 아시아 최대의 커피 생산지임에도 불구하고, 대도시 이외에서는 제대로 커피를 마실 수 있으므로, 인스탄트커피를 가져가면 현지식사 후 느끼한 맛을 제거하는데 매우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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