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는 여행

덴마크

참 좋은생각 2009. 5. 18. 12:11





덴마크

덴마크는 작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만, 자연만큼은 풍요롭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안데르센과 낙농의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는 약 406여개에 달하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서양 북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랜드와 영국 북쪽의 파로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 ▲ 국회의사당 정문 (겉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다) ▲ 국회의원들의 자가용 자전거가 국회의사당 밖에 세워져있다
      ◈수도 : 코펜하겐(Copenhagen, 약 137만명) ◈인구 : 약 525만명 ◈면적 : 43,094 km2(한반도의 1/5), 자치령 그린랜드 및 페로제도 제외 ◈주요도시 : 올복(Aalhorg), 오후스(Arhus), 오덴세(Odense) ◈주요민족 : 북게르만계의 데인족(Danes) ◈주요언어 : 게르만계의 덴마크어(국민대다수 영어 구사 가능) ◈종교 : 루터복음교(국교, 88%), 카톨릭, 침례교, 유태교 ◈정치형태: 내각책임제
국민 520만명 중 약 5분의 4가 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바이킹의 후예인 덴마크인들은 오늘날 낙농과 공업 디자인등으로 부를 축적하여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평등의식을 심어주어 계급의 차이가 적은 평등·자유·복지의 사회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덴마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의 유물들이 산재해 있으며 바로 이런 것들이 이 나라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 덴마크 작가 수도 코펜하겐 근처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15세 때 배우가 되려고 무일푼으로 코펜하겐으로 갔으며 코펜하겐대학 재학 당시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835년 발표한 <즉흥시인(Improvisatoren)>과 <동화집>으로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안데르센 동화는 이전의 동화와 달리 가난한 사람의 비참한 생활까지도 동화적으로 아름답게 구성한 데 특징이 있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 따스한 휴머니즘이 그의 작품에는 담겨 있다. <인어 공주> <미운 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 수많은 걸작 동화를 남겼다.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 <그림 없는 그림책> 등과 자서전도 유명하다. 안데르센은 소설·극·시·기행문 등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사생활면에서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가 남긴 일기와 서간집 등을 중심으로 하여 인간적인 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1850 대(對)독일전쟁으로 국민을 격려하는 시를 많이 발표 ▲ 키에르케고르 (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 덴마크 철학자. 코펜하겐 출생.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엄한 수련을 받았고, 17살에 코펜하겐대학에 입학해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여 1841년 《아이러니 개념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 사이 1837년, 14살된 레기네 올센과의 사랑·파혼 등의 정신적 갈등은 뒷날 미적(美的) 저작의 주제가 되었다. 그 뒤 베를린으로 가서 당시 이름을 떨치던 철학자 F.W.J. 셸링의 강의를 들었으며, 이듬해 귀국하여 저작생활로 들어갔다. 1843~1846년의 짧은 기간에 《이것이냐 저것이냐:삶의 단상(1843)》 《반복(1843)》 《두려움과 떨림(1843)》 《불안의 개념(1844)》 《인생행로의 여러 단계(1845)》 등 미적 저작과 《철학적 단편(1844)》 《단편후서(斷片後書, 1846)》 등 철학 저작을 모두 익명으로 출판하고, 그 밖에 그리스도교에 관한 많은 교화적 강의를 발표하였다. 그 뒤 저작활동에 허무감을 느껴 시골 목사로서 조용한 생활을 원하였으나 풍자신문 《해적》에 그의 작품과 인물에 대한 오해와 중상이 가득찬 비평이 실려, 그에 맞서 싸우는 동안 다시 그리스도교인으로서의 새로운 정신활동과 저작에 대한 의욕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신문의 희평(戱評)이나 세간의 조소에 굴하지 않고 대중의 비자주성과 위선성을 혹독하게 비판하였으며, 절망 속에서도 단독자(單獨者)로서 신을 찾는 종교적 실존의 이상적인 자세를 《죽음에 이르는 병(1849)》이나 《그리스도교의 수련(1850)》에서 추구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그의 비판은 다시 기성 그리스도교와 교회 본연의 자세에까지 미쳐 《순간(1855)》 등으로 극렬하게 공격하였다. G.W.F. 헤겔식의 범논리주의에 맞서 불안과 절망 속에서 개인의 주체적 진리를 찾은 그의 사상은 20세기 초까지 덴마크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09년부터 독일에서 번역 전집이 발간되어 K. 바르트·M. 하이데거·K. 야스퍼스 등 변증법 신학자와 실존철학자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때부터 키에르케고르의 이름은 현대 그리스도교 사상 및 실존사상의 선구자로서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 알려졌다. ▲ 인어공주 상 덴마크를 상징하는 작은 인어상 인어상은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에서 동기를 얻은 조각가 에릭센이 자신의 부인을 모델로 하여 1913년에 만들었다. 그 인어상은 실제의 사람의 크기와 똑같다고 한다. 인어상은 칼스버그 재단에서 만들어서 코펜하겐 시에 기부하였다. 그동안 머리와 팔이 잘려나가고 페인트를 뒤집어쓰는 등 여러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2003년 9월 11일 폭탄공격으로 파손되어 바다에 버려져 기도 하였다. 안내자에 의하면 덴마크에서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인어공주를 여러 가지로 재미있게 보도하여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이 동상 하나로 어마어마한 관광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이 인어 공주 상을 보면 왜 우리가 이곳에 찾아왔나 할 정도로 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 인어공주 상을 유럽의 4대 설렁 중에 한곳이라고 한다. ▲ 여왕이 거주하고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전 ▲ 아말리엔보르 궁전 전경 8각형의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4채의 로코코 풍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아말리엔보르 궁전은 1794년 이래 덴마크 왕실의 주거지로 현재 마르그레데 2세 여왕과 그 가족이 살고 있다. 궁전의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여왕이 근무하고 있는 건물에는 덴마크의 국기를 달아 놓아 외부에 표시 를 한다. 궁전 서쪽에 있는 바로크풍의 프레데릭스 교회는 1894년에 완성된 것으로 토요일 오전 11시에만 개방하는 중앙 돔에 올라가면 아말리엔보르 궁전의 전경 을 감상할 수 있다. ▲ 근위병 모습 이곳 광장에서는 근위병 교대식을 하루에 3회 거행하고 있는데 12시에 가장 크게 거행하고 있으며, 10시와 오후 2시에는 소규모로 거행한다. 근위병 몇 명씩 돌아가면서 교대를 하고 있다. 근위병 교대식은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 분수사이로 보이는 오페라 하우스가 아름답다 ▲ 분수사이로 보이는 궁정이 아름답다 여왕궁 관람을 마치고 오페라하우스 관람을 가기 위하여 걸어가다 보니 분수가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로 보이는 궁전의 모습은 더욱더 아름답게 보인다. ▲ 오페라하우스 근경 오페라하우스에는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 직접 가보지는 못하였다. 관람을 건물이 보이는 해안가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멀리서 구경을 하였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2001년 11월에서 2004년 10월까지 공사기간을 거쳐 2005년 1월 15일 개관하였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가 지하 5층, 지상 9층으로 공사비도 한국 돈으로 계산하여 4,850억 원 정도로 많이 투자를 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헤닝라르센이 건축설계를 하고 음향설계는 영국 애접사가 하였다. ▲ 오페라하우스 원경 오페라 하우스는 운하 옆에 건축되어져 있으며 지붕과 연결된 겐틸레버 보는 직사광선과 바람을 막기 위하여 설치하였으며 이곳에서 코펜하겐의 항구와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페라 극장 천장은 10만 5천개의 금도금 잎사귀로 장식을 하였다. 우리가 알기에는 오페라하우스 하면 호주의 시드니를 떠오르는데,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도 덴마크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를 하였다고 한다. 덴마크에 있는 오페라하우스보다 음향이 잘된 오페라 하우스는 없다고 한다. 덴마크 사람들도 이곳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사전예약을 한 후에 부킹을 통하여 볼 수가 있다고 한다. ▲ 건물과 바다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출렁이는 파도소리와 가끔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밖에서 바람소리를 들으니 한 폭의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