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야기

한국어 교사교육 수강하기

참 좋은생각 2008. 1. 28. 17:10
선생님, 다시 만날 수 있습니까?”
 
한 학생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럼요, 다시 만날 수 있지요. 선생님 전화번호를 가르쳐 줄 테니까 전화하세요.”
 
그 학생은 팔뚝에다 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씩 웃었다. 웃는 그 학생의 가지런한 잇속이 참 고와 보였다. 옆에 서있던 학생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전화번호를 따라 적었다.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어려움을 참고 이겨나가는 그들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새로 시작한 공부, 힘들지만 재미있어
 
요즘 나는 좀 색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그 공부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공부와는 조금 다른 공부다. 나는 지금 외국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지난 9월부터 나는 학생이 되었다. 일주일에 이틀,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면 공부하러 강화도에서 서울로 나간다. 처음 얼마간은 이른 저녁을 먹고 오후 5시 쯤에 길을 나섰다. 하지만 곧 이어서 동기생들끼리 따로 모여서 공부하는 '스터디' 모임을 만들었고, 그래서 오후 3시쯤에 집에서 나서야 했다.
 
일찍 집에서 나가야 하니 아버지 저녁이 걱정되었다. 남편이 일찍 퇴근해 오면 괜찮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버지 혼자 식사를 하셔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는 법을 가르쳐 드렸다.
 
저녁상을 차려놓고 나서면서 아버지에게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밤길 조심해래이. 차 조심하고 그래라."
 
하시면서 다 큰 자식을 걱정하셨다. 아버지는 공부하는 딸을 보니 흐뭇하신가 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 안 카나. 늘 공부하는 사람을 선비라 카제."
 
그러시면서 집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신문이며 책을 일별하셨다. 책을 가까이 하는 딸과 사위, 그리고 외손주들이 아버지 눈에는 좋게 보이시나 보다.
 
  
남편이 저에게 뭘 배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사명감을 배운다고 말했습니다.
ⓒ 이승숙
한국어 수업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높아지자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들도 늘어간다고 한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서 동남아와 중앙 아시아에서 까지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교사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동기생 중에서도 카자흐스탄을 비롯해서 일본, 베트남, 중국 등지에서 한국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직장 관계로 외국에 나갔거나 아니면 선교 목적으로 외국에 갔다가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인라면 누구나 다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 한국어,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줄 아는 한국어, 그래서 그거 못 가르칠까 싶어 처음에는 쉽게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낀 그들은 한국에 들어와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나는 오랫동안 초·중학생들에게 논술과 독서지도를 해왔다. 그래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뭐 어려우랴 생각했다.
 
지난 봄,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한족 새댁에게 한국어를 몇 달간 가르쳐 준 적이 있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에서 살아갈 새댁이 안 돼 보여서 가르쳐주마 약속했지만 사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국어를 전공했는데 설마 그거 못 가르치랴 하고 시작했던 것이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첫 수업에서 나는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거랑 달랐다. 내가 알고있는 한국어 지식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외국인에겐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에게는 가르치는 법이 달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서 한국의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는 학생들, 아침 식사를 걸렀는지 과자와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이승숙
한국어수업
 
그래서 눈을 돌려 찾아 보았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 있는지 알아 보았다. 무턱대고 할 수 있으리란 생각으로 중국 새댁을 가르쳤던 그 경험이 나를 새로운 길로 안내해 주었다. 
 
찾아보니 '국제언어교육원' 또는 '한국어학당'이 있는 대학들이 있었다. '한국어학당'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이다. 요즘 한창 인기가 있는 '미녀들의 수다'에 나오는 미녀들도 대부분 이런 곳에서 한국어를 배웠거나 현재 배우고 있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시범강의 한 번 하니 백번 수업 듣는 거보다 더 낫네
 
나는 여러 학교 중에서 우리 집에서 다니기가 가장 수월할 것 같은 학교를 선택하고 원서를 냈다. 그리고 학생이 되었다. 오랫동안 가르치기만 했지 새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었는데, 새로 공부를 하니 힘은 들었지만 재미도 있고 신이 났다.
 
지난 화요일(6일)과 수요일(7일)에 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 날은 그동안 배우고 익혔던 것들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실수를 통해서 또 한 걸음 나아가는 날이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은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경험이 더 크다는 걸 말해준다. 지난 화요일과 수요일은 그동안 이론으로 배웠던 것들을 확인하는 날이었다. 참관수업을 통해서 현장의 분위기와 교수법을 배웠다. 그리고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내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세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문법과 읽기, 듣기 수업을 참관하고 또 시범강의를 하였다. 우리가 들어간 그 반은 초급2반이었는데 한국에 온 지 3개월 정도 된 학생들로 구성된 반이었다. 그 학생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한국어를 잘 했다. 3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꽤 많은 어휘들을 구사할 줄 알았고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 대답도 하였다.
 
  
한국어를 배운 지 두어 달 밖에 안 된 초급반 학생들입니다. 열심히 가르치고 또 열심히 공부한 덕분인지 학생들은 한국어를 생각보다 잘 했습니다.
ⓒ 이승숙
한국어 수업
 
참관 수업을 하면서 배운 점이 참 많다. 선생님들은 항상 웃는 얼굴로 수업을 진행했고 그리고 발음을 정확하게 하면서 알아듣기 쉽도록 또박또박 말을 하였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수업이 끝날 때까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수업과 철저히 연관된 것들이었다. 한 편의 연극처럼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따라 수업이 진행되어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나 하나 힉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외국에서 유학온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이 그토록 뛰어났던 것이다.
 
한국을 잘 알릴 선생님이 되리라
 
지금 내 윗입술에는 물집이 잡혔다가 떨어져 나간 흉터가 남아있다. 참관 수업을 하고 시범강의를 준비할 때는 힘든 줄 모르고 재미있게 했는데 다 하고나니 입술에 물집이 잡혀 버렸다. 
 
한 번씩 혀로 흉터를 쓱 핥아본다. 그러면 시범강의를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얼굴도 따라서 떠오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다니다가 온 학생들이 대부분인데도 그들은 어린애처럼 보였다. 아마도 그 학생들은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을 엄마처럼 믿고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을 보니 꼭 내 아이처럼 느껴졌다. 엄마 품을 떠나서 낯설고 물설은 이국에서 고생하는 그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엄마같은 마음으로 다가갔다. 그들 모두가 뜻한 바를 이루기를 빌어 주었다.
 
수업을 마치면 밤 10시가 넘었다. 네 시간 동안 계속되는 수업을 듣노라면 온 몸이 뒤틀리기도 했고 피곤이 몰려오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피로를 쫓기 위해 커피를 마시곤 했다.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슴이 막 벅차 오른다. 공부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워준 남편이 고맙고 또 나를 밀어주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들에 고마운 마음을 항상 전한다. 양화대교를 건너 올림픽도로를 달릴 때면 신이  난다.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을 따라부르면서 오다보면 가슴 가득 행복감이 차오른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이 묻곤 했다.
 
"여보, 오늘 뭐 배웠어?"
 
그러면 내 대답은 명쾌했다.
 
"응, 나는 늘 사명감을 배워. 수업 내내 사명감이 차올라. 한국어를 잘 가르쳐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막 차 올라."
 
나는 정말 사명감을 배운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한국을 잘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우리의 보물인 한글을 잘 지키고 가르쳐야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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