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워낙 뼈저리게 겪어 가난의 설움 잘 알죠"

참 좋은생각 2007. 11. 28. 16:16

"워낙 뼈저리게 겪어 가난의 설움 잘 알죠"


“1년에 1억원씩,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쓰겠습니다. ”

집안 형편 때문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온갖 궂은 일을 하며 대학을 마쳤던 한 40대 대학교수가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정년 때까지 해마다 기부하기로 했다. 경희대 동서의료공학과 한승무(43) 교수는 27일 이 같은 내용의 기부약정서를 조인원 경희대 총장에게 전달했다.

한 교수가 매년 1억원씩 낼 경우 정년인 65세까지 총 23억원을 기부하게 된다. 한 교수는 이날 약정서 전달식에서 “최근 제가 특허를 따낸 의료기기 제조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하면서 수익금이 생겨서…”라고 기부 동기를 밝혔다.


정년까지 해마다 1억원씩 기부하기로 약속한 한승무 경희대 교수(왼쪽)가 27일 조인원 경희대 총장에게 기부약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경희대 제공


그러나 한 교수에겐 남다른 사연이 있다. 한 교수는 공고 출신이다. 1979년 ‘등록금 면제, 기숙사 무료’라는 이야기만 듣고 경북기계공고에 진학했다. 경북 영천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남의 밭 양파나 무·고구마를 서리해 배를 채울 만큼 가난했던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버스 탈 돈이 없어 10㎞ 떨어진 중학교를 1시간 동안 자전거로 다녔어요. 달걀 프라이 먹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그해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자 경북기계공고의 기숙사 설립 계획이 무산됐다. 그는 친척집에 얹혀 살거나 자취를 하면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하굣길에 집집마다 돌며 마당에 수세미를 던져 놓고는, 다음날 등굣길에 “수세미 대금 받으러 왔다”며 능청을 떨어 돈을 벌었다. 식당 서빙, 군밤장수까지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러나 책과 연필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잠을 아끼느라 고3 때 1년간은 누워서 자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경북기계공고를 수석으로 졸업, 영남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과외지도는 물론 감귤장사까지 하며 ‘고학(苦學)’은 계속됐다. 그는 “시험 쳐서 카투사(미군에서 일하는 한국군)로 복무할 때가 가장 편했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연세대 대학원을 마친 뒤엔 한 학기 등록금과 편도 항공기 티켓만 갖고 미국 뉴욕주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까지 마쳤다. 한 교수는 “나는 가난을 겪어봤기 때문에 (가난한 학생의) 서러움을 잘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