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통령 꿈꾸는 이명박 그를 일궈낸 부모의 이야기
37세의 나이로 현대건설 대표이사에 취임해 최장기 샐러리맨 CEO라는 역사를 남긴 이명박 전 서울시장. 성공한 리더십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그는 지난 2월 출간된 이명박의 마음속 이야기 「새벽 다섯시」를 통해 어려움이 닥칠 때 도전하고 극복하는 힘을 주었던 주인공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꼽았다. 시련을 열정으로 이끌어준 이 전 시장의 부모를 통해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어머니의 리더십
당당하라, 직시하라. 정면 돌파 없이는 이길 수 없다
|
제일 똑똑한 자식에게 학비를 몰아주고, 그가 성공했을 때 남은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그러나 거기서 희생자가 되었던 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까지 한 일이다. 나의 학창 시절은 어머니의 ‘선택’에서 제외된 채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10년 후, 20년 후 현대그룹이라는 대기업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서 수많은 직원을 거느리면서, 또 공직의 임무를 맡으며 새로운 인재를 뽑는 자리에서 이따금 이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 옛날, 어머니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어머니의 무서운 길거리 특강
10대에 이미 거리 한복판에서 세상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뻥튀기 장사를 했다. 장사는 좀 나아졌지만 뻥튀기보다 더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여학교 앞에 나가 자리를 잡고 기계의 불을 조절해가며 뻥튀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불거졌다. 아침 해는 야속하게도 기계를 돌리는 시커먼 손, 남루한 교복 차림, 땟국으로 얼룩진 내 얼굴을 훤히 비추는 것이다. ‘저 여학생들이 나를 보면 뭐라 할까….’ 아무리 자신을 추슬러도 뻥튀기 장사꾼 이전에 지나가는 여학생들과 같은 또래 남학생이라는 입장이 마음을 짓눌렀다. 내 앞을 지나치는 수많은 시선을 받을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여학생들이 많이 지나가는 등교 시간에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그들의 눈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전전긍긍하다 보니 그럴 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구해 쓰는 거야, 밀짚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장사를 하면 그들 시선과 마주칠 염려가 없을 거다. 그렇게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호통소리가 들렸다.
“지금 뭐하는 기고? 장사하는 놈이 웬 밀짚모자고?”
어머니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버럭 야단을 치셨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거리에서 큰소리로 야단맞는 게 창피하고 서럽기도 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어머니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씀하셨다.
“얘야, 사는 사람하고 파는 사람하고 시선이 마주쳐야 장사가 되는 기다. 상대방의 눈을 피하면서 어찌 물건을 팔래? 서로 마주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는 기라.”
어머니는 야단치는 것이 아니었다. 장사를 하려면 사람들 눈을 마주 보고 당당하게 해라. 그래야 장사가 된다! 정면으로 부딪쳐라. 그래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 어머니의 매서운 ‘길거리 특강’은 내가 더 이상 밀짚모자를 쓰지 않는 것으로 끝이 났다.
사춘기에 맞닥뜨린 처절한 삶의 체험 현장
그 시절 나는 거리에서 두 부류의 사람을 경험했다. 내게는 곧 처절한 삶의 체험 현장이기도 했다.
|
“이거 모두 얼마지?”라고 한마디 묻고는 말없이 뻥튀기를 싸들고 사라진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 도와주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배려를 느꼈다. 그런 사람을 만나는 날엔 어려움을 극복할 용기가 솟았고, 좀더 잘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미 10대 이전부터 두 부류의 사람들을 겪으며 살아왔다. 어린 눈에도 세상은 불공평해 보였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는데도 배를 곯고, 누구는 일하지 않는데도 잘 먹고 잘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사는 방 바로 옆에는 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거지 가족이 살았는데, 그 집 어른들이 마을을 한 바퀴 휙 돌고 오면 밥상에는 음식들이 한상 차려졌다. 우리 부모는 몸이 부서지게 돈을 버는데도 사는 모양으로 보자면 옆집 거지만도 못했다. 그렇게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일까.
뒤늦게 진가를 알게 된 부모님의 가정경영
1998년 늦가을,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미국이 준비하는 21세기의 국가 경영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던 차에 워싱턴 D.C.의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와달라는 초청을 받고 1년간의 연구 과정을 갖기로 한 것이다. 그날도 LA 교포를 위한 시국 강연을 끝내고 홀을 빠져나오려는데, 늙수그레한 한 남자가 주최 측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주위에서 애써 만류해도 상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장님을 잠깐만 만나게 해달라”고 우기고 있었다.
사람을 찾는 데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갔다. 박 아무개라고 소개하는데, 알고 보니 어릴 적 절간집에 함께 살던 이웃이었다. 차 한잔을 앞에 두고 어릴 적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저는 밥도 제때 먹고 옷도 회장님보다 나은 거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이 회장님 집보다 더 잘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저는 내 입, 내 자식 입에 밥을 넣어주는 일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데, 회장님은 세상의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어려웠던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은 배고프다면 더운밥을 얻어다 먹이고, 추워하면 두꺼운 옷을 얻어다 입혔습니다. 그런데 회장님 부모는 안 그러셨어요. 얻어 입은 우리는 아직까지 제 입만 채우고 살고 있고, 회장님 형제들은 다 잘되셨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회장님 부모님께선 안 그러셨다”는 그의 말은 맞다. 어머니의 강직한 성품으론 아무리 굶주리고 헐벗어도 남의 것을 거저 구해온다거나 얻어다 입히는 일이 통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따뜻한 밥을 얻어다 먹이지 않았다. 아무리 배고파도, 추위에 떨어도 옷을 기워 입힐망정 얻어다 입히지 않았다.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세상 사는 법을 익히도록 놔두셨다. 말 이전에 눈빛으로, 눈빛 이전에 기도로 세상의 어려움을 뛰어넘게 하셨다.
부족함을 통해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는 힘을 알려주려 하셨고, 형편이 어려울 때면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가르쳐주셨다. 힘들던 시절의 추억담을 나누면서 나와 그 사이엔 회한의 웃음이 번져갔다. 나도 잘 모르고 지내왔는데, 그 옛날 어머니에게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자식을 위하는 길인지를 찾아낸 그 친구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어른을 생각하면 복 받는 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리더십
가난은 삶을 불편하게 하지만, 거지 근성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다
|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이웃 소년이 먹을 것을 얻으러 우리 집 근처를 기웃거렸다. 아버지는 윗옷도 걸치지 않고 구걸하는 아이에게 당신이 팔아야 할 옷가지와 돈까지 쥐여주고서는 한마디 하셨다.
“이놈아! 아무리 구걸을 하고 다녀도 옷은 입고 다녀야 할 것 아니냐. 이걸로 부모님께 국이라도 끓여드려라.”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가 체념 반 확신 반 말씀하신다.
“아부지를 봐라. 우리 대代에는 못 누려도 후손이 복을 받을 기다.”
어머니는 마음이 부자면 나중에 정말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공부만 잘하면 뭐 해 가정교육이 잘돼 있어야지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이 재물에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그랬다면 자식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드셨을 것이다. 못 먹이고 못 가르쳐도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신 적이 없다.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지만 자식이 바로 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아버지는, 학교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켜서 그랬는지 평상시 학교 공부라는 말 대신 ‘가정교육’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셨다.
“공부만 잘하면 뭐 해? 가정교육이 잘돼 있어야지.”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듣기가 민망했는지 “부모로서 뭐 그리 잘해준 게 있다고 가정교육, 가정교육 하시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들은 척도 안 하셨다. 한번은 마당 한쪽에 앉아 풀빵 틀을 닦는데 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오셨다.
“박아, 힘들지. 하지만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게 있다. 세상을 둘러봐라. 잘 먹고 잘살겠다고 남을 속이고 거짓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령 가난에서 벗어난다 해도 자기 이득밖에 챙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 이 나라를 얼마나 어렵게 하는가를….”
아버지는 거지 근성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다.
“가난보다 더 무서운 게 거지 근성이라는 거다. 물론 가난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거지 근성처럼 위험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정직이 중요하다… 거지 근성을 갖게 되면 정직을 포기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세상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나의 신념은 아버지를 보며 배웠다. 아버지는 언제나 상생의 이치를 마음에 심어주셨다.
“나만을 위해 이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적게 갖는 것에 불만이 생기는 법이다. 그래서 더 많이 갖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게 돼. 하지만 그래서는 행복할 수 없다.”
아버지가 일깨워준 상생의 이치
사실 요즘 부모들은 자식에게 해줄 것을 다 해주고도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잘해주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자식도 드물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려운데 자식은 전혀 어렵지 않고, 부모는 가난한데 자식은 부자인 가정이 많다. 또 이웃이 불우할 때 그 어려움을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 아버지가 늘 들려주신 말씀대로 자기 이득만 내세워서는 나라가 잘살 수 없다.
서울시장에 취임해서의 일이다. 옛날에 내가 살던 달동네를 찾았다. 수십 년 세월이 흘렀건만 비탈길 단칸방은 옛 모습 그대로다. 누가 살까 궁금해 문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다.
동네사람들은 치매로 거동을 못하는 노인이 사신다며 안쓰러워했다.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문을 열었다. 컴컴한 방에는 노인 한 분이 벽을 마주하고 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옛날에 살던 곳이 처량한 모습 그대로 있다는 것에 놀랐다.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그 방은 세상과 단절돼 있었다.
어둠에서 나올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우리의 이웃에 산다. 설령 가족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니 부모를 모시는 데까지 손이 미치기 어렵다. 그렇다 보니 달동네 꼭대기 단칸방에서 삶의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복지관련 시 직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중증 치매 노인들을 모실 수 있는 요양소를 지어 자립이 어려운 분들을 모실 수 있는 제도를 모색해보았다.
노숙자 일자리 갖기, 청년 실업자를 위한 프로젝트 등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워줄 수 있는 몇 가지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회 양극화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하지만, 결국 양극화된 사회에 희망을 주는 것은 일자리와 복지 문제이다.
양극화 해소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도와주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자리를 구해서 희망을 갖게 되면 사회 불평등은 자연히 사라진다.
국가도 가정을 기반으로 하는 커다란 공동체이므로 국민이 어려워하면 국가도 어려움을 함께 느끼고, 나라가 힘들어지면 국민도 함께 나라의 고통을 나눌 마음이 필요하다. 희망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싹을 틔운다.
* 본문은 「이명박의 마음속 이야기 - 새벽 다섯시」(이화복 엮음·기획출판 책장)에서 발췌했습니다.
■기획 / 장회정 기자 ■사진 / 박형주 · 기획출판 책장 제공
'좋은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공에 필요한 6가지 요소는 (0) | 2007.04.25 |
|---|---|
| '성공학 대가' (0) | 2007.04.21 |
|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 (0) | 2007.04.17 |
| [스크랩] [복을 부르는 10가지 생활 습관] (0) | 2007.04.17 |
| [스크랩] 일년내내줄수있는101가지 선물 (0) | 2007.04.17 |


